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고린도후서 7장 7절『그가 온(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파라클레세:권면)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에피포데신) 과 애통함(오디르몬)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젤론)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아낭겔론)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그는 디도를 말한다. 디도에게 임재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서 받는 권면이 너희에 대한 것이라는 말이다. 주님이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신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선포)해주신 것이다. 아낭겔론(ἀναγγέλλων)은 위에서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선포하신 내용은 에피포데신(ἐπιπόθησιν열망)과 오디르몬(ὀδυρμόν애통함)이다. 젤론(ζῆλον열심) 아낭겔론은 보여주다, 말하다 라는 의미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편지를 통해서 질책하고 그들이 슬퍼했지만, 디도를 통해서 그들이 회개하고 바른 길로 들어선 것을 바울이 알게된 것이다.
고린도후서 7장 9-10절『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엘뤼페데테 가르 카타 데온)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엘뤼페데테 가르 카타 데온(ἐλυπήθητε γὰρ κατὰ θεόν)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슬픔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근심은 어떤 일에서도 상처받지 않게 하고,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해명하게 하며, 자신에게 스스로 잘못 산 것에 대해서 분개하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갈망하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열심 있게 하며, 스스로 징계하게 하며, 결백함을 모든 일에서 입증하였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래서 잘못된 생활이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디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권면을 받은 것이 더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7장 14-15절『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아나밈네스코메누)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스플랑크나) 이 더욱 깊었으니(페리쏘테로스)』
여기서『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라는 부분은 『내가 그에 관해 너희에게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라는 말이다. 바울이 디도를 자랑하는 것이다.
스플랑크나(σπλάγχνα)는 창자라는 의미이다. 배에서 생수가 나온다는 말처럼 마음의 중심을 의미한다. 페리쏘테로스(περισσοτέρως)는 더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아나밈네스코메누(ἀναμιμνῃσκομένου)는 위에서(하늘) 기억한다는 의미다. 순종을 통해서 주님이 기억하시는 것이다. 디도처럼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 지성소에 들어가서 주님을 영접하고 만나라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에게 지성소의 기도를 주문한다. 심령 속에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 분의 미세한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뜻을 세우고, 삶의 방향을 오직 그 분을 향하며 살아라는 것이다. 디도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을 말한다. 그는 지성소의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가 바울의 경험을 듣고 정진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디도서 3장 1-15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디도에게 거짓교사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바로잡고, 바른 말씀으로 교훈하고 가르치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사단에게 속았었고,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했으며,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가증스러운 자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간 이후로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사단에게 속아서 죄의 노예가 되어 사단에게 종노릇 하는 불쌍한 인생을 살다가 이제 사단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도가 구원받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신분이 바뀐 이유가 내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로부터 시작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육의 몸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야만 한다. 이것이 피의 새언약이다.
거짓의 사람들, 즉 이단에 빠진 자들과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고 말씀한다. 거짓의 사람들은 거짓의 영, 즉 사단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진리를 설명한다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없다. 거짓의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이단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구원받은 존재이기에, 그에 걸맞은 삶, 즉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날마다 죽노라』를 고백했다. 우리 옛사람(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하여는 거룩함이요, 세상에 대해서는 빛이 되는 것이다. 그 빛이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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