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 구약성경 인용 )   고린도전서 2 장 6-9 절『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이 지혜 ( 에이스 돜산 헤몬 ) 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 귀로 듣지 못하고 ,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 』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하며 ,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 감추어졌던 비밀인데 , 말씀이신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므로 계시가 드러나는 것이다 . 에이스 돜산 헤몬 ( ε ἰ ς δ ό ξαν ἡ μ ῶ ν) 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가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에 대해서 , 에베소서 1 장 3-5 절을 보면 ,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이다 . 그래서 성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 하나님이 스스로 ...

바울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했다

  바울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했다 사도행전 25장 1-3절『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네로가 황제로 있던 당시 벨릭스에 이어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권력을 위임받은 베스도 총독에게 청탁하여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년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베스도 총독에게 청탁할 것들, 논의할 것들이 많았을텐데,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먼저 꺼낸 것을 보면, 지난 2년간 그들의 바울을 향한 얼마나 분노와 노여움이 컸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히 감금되어 있으니, 그를 고발하고자 하면 자신과 함께 내려가자고 말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더 높고 강한 권력을 가진 유대의 총독 베스도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했다. 호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카리스 즉, 은혜로 여기려 했을 것이다. 반면, 바울은 지난 2년 동안 강한 권력자를 찾아 호의를 구걸하지 않았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약 8-10일쯤을 보내고 가이사랴로 내려갔다. 이튿날 바울을 불러 재판장에 세우자, 예루살렘에서 함께 온 유대인들이 그를 에워싸고 여러 가지 죄목들을 걸어서 고발했다. 그러나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바울은 공회앞에서 자신을 변호했던 것처럼 또 총독 벨릭스 앞에서 변호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변호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그리고 세상법적으로도 전혀 죄가 없다고 변론한 것이다. 그러자 베스도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마음(카린)에 좋게 보이도록, 바울에게 묻는다. 그...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사도행전 24 장 22-23 절『벨릭스가 이 도 ( 호두 ) 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두 사람의 주장을 들은 벨릭스는 재판을 연기하고 ,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지키되 , 그에게 자유를 주고 , 그의 친지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였다 . 호두는 길 (way) 이다 . 길을 한자어로 말하면 도이다 . 도라는 의미는 종교적인 신앙사상에 대한 것이다 .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내용이 된다 . 벨릭스가 이 기독교의 신앙사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 수일이 지나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에 대해 듣고자 했을 때 , 아마도 벨릭스와 그 아내는 자신들에게 평안을 줄 만한 얘기를 듣고 싶어 찾아왔을 것이다 .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불의하며 탐욕으로 가득찬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용기 있게 강론을 했고 , 이로 인해 벨릭스는 두려워했다고 했다 . 사도행전 24 장 27 절『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 』 벨릭스는 기독교의 신앙 사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탐욕으로 인해서 바울을 구속했다 . 왜냐하면 ,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이다 .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 사람을 의식한 것이다 .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의 마음으로 듣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날도 교회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조건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 믿기로 작정을 했다라도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 삶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이다 . 믿음과 행동의 변화는 항상 붙...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사도행전 18장 24-26절『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호돈)를 배워 열심으로(제온 토 프뉴마티)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아크리보스) 말하며(엘라레이) 가르치나(에디다스켄)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에피스타메노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제온 토 프뉴마티 (ζέων τῷ πνεύματι) 는 성령 안에서 열심히 라는 말이다. 아크리보스 (ἀκριβῶς) 는 열정적으로 라는 의미다.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열심이었으며, 예수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인식하고, 성령에 대해서도 듣고 있었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전했다는 것이다. 에피스타메노스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요한의 물세례만 받고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므로 성령세례를 체험적으로 알지 못한 것이며 그래서 성령세례를 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말해주었다. 도 라고 번역한 호돈( ὁδὸν )은 길, 진로, 형태, 수단 등으로 사용된다. 주의 도와 하나님의 도가 등장한다. 아볼로는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신도들에게 가르쳤으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것으로 표현하는데, 주의 도(호돈 투 큐리오스  ὁδὸν τοῦ κυρίου )는 하나님의 도( ὁδὸν τοῦ θεοῦ )와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큐리어스는 히브리어 아도나이의 헬라식 이름이다. 즉 아도나이는 이후 야훼(여호와)로 불려졌으며, 야훼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고유명사)라는 유일신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일반명사로서 신이라는 표현이다. 주의 도라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언급되는 여호와로서 메시야를 보내실텐데, ...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사도행전 18장 18절『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케이라메노스)』 유대인들은 서원기도를 할 때 머리카락을 자르는 전통이 있었다. 케이라메노스는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했다. 순간적으로 바울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성령이 그렇게 인도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서원이 이루어질 것을 이 행위를 통해서 확신하라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생의 한 걸음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인생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다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그것은 이전까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들 부부는 바울과 같이 고린도에 머물렀고, 수리아로 떠났고 에베소에 이른다. 사도행전 18장 19-21절『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바울이 각 지역에서 작별하고 떠나는 모든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에베소에서 작별할 때 남긴 말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했던 바울의 두번째 전도여행은 작별과 떠남의 여정으로 기록된다. 그는 1년 6개월 간 머물렀던 고린도에서 작별하였고,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떠났다.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번역된“팔린 아나캄프소 프로스 휘마스 투 데우”( πάλιν ἀνακάμψω πρὸς ὑμᾶς τοῦ θεοῦ ) 투( τοῦ )라는 관사는 문법적으로 소유격을 나타낸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 전도의 전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